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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넋두리/아빠의 삶

기다림의 미학

그저 건강하게만 태어나 주렴

아이가 아내의 뱃속에 있던 시기에는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그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세상에 나오기 만을 바랐다. 아이에게는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를 닮았다면 인형처럼 예쁜 아이가 나오기를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랄까?

 

하지만 막상 딸 아이가 세상에 나오고 나니, 이왕이면 주변 사람들에게 예쁘고 개월 수에 비해서 발달 속도가 빠르다는 말이 듣고 싶었고. 어린이집에 갈 시기가 됐을 때에는 학습 능력이 빠르다는 말을 듣고 싶어 했고 아이가 10살이 된 지금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예의가 바르고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등등... 점점 바라는 게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가끔은 나 스스로 아이에게 조금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세상의 많은 엄마, 아빠들은 방송에 나오는 전문가 수준의 체계적인 방식이 아니더라도 나름대로의 육아방식이 있을꺼라 생각한다. 나 역시 처음 아빠가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혼자서 다짐했던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아이를 재촉하지 말고 기다려 주자"였다.

 

"○야, 빨리! 빨리!!!"

나도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시절에도 아이를 재촉하는 부모들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다지 좋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너 시간이 몇 신데 아직도 그러고 있어?!! 진짜 혼나 볼래?!!!

아이가 밥 조금 늦게 먹는게 무슨 큰 일이고, 아직 성장 중이고 걸음이 늦은 아이들이니까 당연히 걷는 속도가 느린 거고, 한창 호기심이 많은 시기라서 이것저것 궁금한 것도 많고 한 눈 팔일이 많은 게 당연한 아이에게 저렇게 재촉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던 내가...

 

이제는 아이에게 빨리! 어서! 라는 말을 항상 달고 산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이와 '대화'가 가능해진 이후로 점점 약속을 지키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최근에도 가끔은 '내가 너무 아이를 재촉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며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한 편으로는 매사에 서두르지 않고 속된 말로 너무 느긋한 아이를 보면 '이런 성격으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아이를 기다려 주는게 정말 맞는 걸까?

고리타분한 이야기 일 수 있지만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항상 누군가와 경쟁하며 살아가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뛰다 못해 드론을 날리는 이 시대에 아이를 무작정 기다려 주는 게 정말 아이를 위해서 올바른 양육 방식인 걸까?

나 스스로도 결정하기 힘든 어려운 주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이를 기다려 주는 아빠가 되고 싶다. 앞으로 10년, 20년, 30년이 지나서 딸 아이가 치열하게 남들과 경쟁하며 살다가도 아빠,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언제든 돌아와 기대서 쉴 수 있는 그런 부모, 가족의 모습이라면 그것 또한 값진 결실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내일이 되면 또 아이를 엄청 재촉하겠지....

 

 

미안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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